각 유적의 개요
홋카이도·도호쿠 지방 북부의 조몬 유적군
‘홋카이도·도호쿠 지방 북부의 조몬 유적군’은 선사 시대 일본인들이 토기를 처음으로 사용하기 시작한 시기부터 한 곳에 정착해 생활하고 발전하며 성숙에 이르는 1만 년에 걸친 역사를 말해줍니다. 이들 유적에서 출토된 유물은 세련된 디자인 감각을 뒷받침하며, 각 마을들 사이에서 교역이 이루어졌다는 사실을 밝혀 주기도 했습니다. 출토품으로는 옻칠한 팔찌, 비취 구슬, 표정이 풍부한 토우, 다양한 양식의 장식 토기 등이 있습니다. 각 유적에서는 그동안 잘 알려지지 않았던 선사 시대 일본 북부의 삶의 모습을 조명하는 새로운 발견이 탄생했습니다.
‘홋카이도·도호쿠 지방 북부의 조몬 유적군’을 구성하는 17개의 유적과 더불어 2개의 추가 유적이 관련된 유적으로 추정됩니다. 해안가나 강 근처 또는 언덕 위에 자리한 이들 유적의 특징은 주변의 다양한 자연환경에 있습니다. 대부분의 유적은 자유롭게 걸어서 견학할 수 있으며 조몬 시대(기원전 13,000년~기원전 400년)의 삶의 모습을 소개하고 출토품이 전시된 시설이 병설되어 있습니다. 가장 이른 시기의 유적인 오다이야마모토 유적부터든, 환상 열석의 어느 하나부터든 원하는 순서대로 둘러볼 수 있습니다. ‘홋카이도·도호쿠 지방 북부의 조몬 유적군’에서 조몬 시대 사람들의 생생한 삶의 모습을 느껴보시기 바랍니다.
오다이야마모토 유적
아오모리현 북부의 쓰가루 반도에 있는 이 선사 시대 유적에서는 석기 뿐만 아니라, 일본에서 가장 이른 시기의 토기 몇 점도 발굴되었습니다. 이곳에서 발굴된 제작물은 선사 시대 일본 북부에 살았던 사람들의 삶의 모습이 구석기 시대 말기를 거치며 어떻게 변화하고 조몬 시대 초기(기원전 13,000년)에 이르러 어떻게 한 곳에 정착하는 형태로 바뀌게 되었는지를 알려줍니다.
석기가 우리에게 알려주는 것

오다이야마모토 유적에서 출토된 석기로는 도끼나 칼 등과 같은 날붙이, 동물의 가죽을 벗기거나 나무를 세공하기 위한 도구, 그리고 사냥에 사용되었을 것으로 추정되는 뾰족한 석기 등이 있습니다. 크고 초보적인 도구부터 기술적으로 세련된 날붙이나 화살촉에 이르기까지 그 형태와 크기가 매우 다양한 이들 석기는 사슴 등 빠르게 움직이는 동물을 사냥할 목적으로 만들었을 것으로 추정됩니다.
대부분의 석기는 점판암으로 만들어졌습니다. 점판암은 근처 강에서 쉽게 구할 수 있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분석에 따르면 당시 홋카이도나 간토 지방에서 볼 수 있는 지역적인 기술 등 다양한 석재 가공 기술이 이곳에서도 이용되었다고 합니다. 이러한 석기와 가공 기술의 다양성은 다른 지역이나 집단과 중요한 교류가 있었을 가능성을 시사합니다.
토기, 그리고 새로운 삶의 방식으로의 전환

오다이야마모토 유적에서 발견된 토기 편은 전 세계적으로도 가장 이른 시기의 것입니다. 같은 토기에서 나왔을 것으로 추정되는 소량의 토기 편에서 탄화물이 부착되었던 흔적이 확인되었는데, 탄소 연대를 측정한 결과 토기 편이 기원전 13,000년까지 거슬러 올라간다는 것이 밝혀졌습니다. 이는 유럽이나 중동에서 토기가 사용되었던 시기보다 수천 년이나 앞선 것입니다.
조몬 시대의 ‘조몬(繩文)’이라는 명칭은 ‘새끼줄(繩)을 굴려서 덧댄 문양(文)’이라는 뜻으로 이 새끼줄 문양은 조몬 시대 토기의 전형적인 특징입니다. 그러나 오다이야마모토 유적에서 발견된 토기 편에는 이 새끼줄 문양이 없습니다. 원래 조리 등 순수하게 실용적인 목적으로 이용되었던 토기는 운반하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토기가 출현했다는 것은 한 곳에 정착하는 정주형 삶의 방식으로 전환했음을 의미합니다. 오다이야마모토 유적에서 출토된 토기 편은 조몬 시대 극히 초기의 것으로서 이 시기부터 일본인들은 한 곳에 정착해 살아가며 생활을 영위했다고 추정할 수 있습니다.
출토품을 볼 수 있는 장소
토기 편과 석기는 소토가하마마치 오야마 후루사토 자료관에 전시되어 있습니다. 오다이야마모토 유적과 도로를 사이에 두고 맞은편에 자리한 이 자료관은 원래 초등학교로 사용되었던 건물입니다. 입장료는 무료입니다. 기본적인 내용 중 일부는 영어로도 정보를 제공합니다.
그 외 주변 볼거리
쓰가루 반도에는 가메가오카 석기시대 유적[링크]과 다고야노 패총[링크] 등 다양한 조몬 시대(기원전 13,000년~기원전 400년) 유적이 있습니다. 가메가오카 석기시대 유적에서는 가장 세련된 형태로 보여지는 조몬 토기 몇 점이 발견되었습니다. 이 외에 다른 일본 북부의 유적지를 방문하면 조몬 시대와 당시 마을의 발전에 대해 좀 더 자세히 알 수 있을 것입니다.
가키노시마 유적
홋카이도 남부 하코다테에 있는 가키노시마 유적은 기원전 7,000년경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유적입니다. 발굴 작업을 통해 선사 시대 6,000년 이상에 걸친 출토품과 무덤 구덩이, 수혈식 건물 터가 발견되었습니다. 이와 같은 사회적, 문화적, 정신적 발전을 보여주는 흔적을 살펴봄으로써 선사 시대 일본인의 삶의 모습을 알 수 있습니다. 이 유적과 인접한 하코다테시 조몬문화교류센터[링크]에서는 가키노시마 유적에서 출토된 유물을 전시함과 동시에, 선사 시대 일본의 사회에 대해서도 종합적으로 소개하고 있습니다.
장례 의식과 매장 관습의 발달
장례 의식과 매장 관습은 조몬 시대(기원전 13,000년~기원전 400년) 사이에 크게 발전했습니다. 기원전 7,000년경부터 무덤은 마을 내 거주지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 만들어졌습니다. 가키노시마 유적에서는 거주지와 무덤지가 분리된 형태로 발견되었습니다. 이 유적에서 발견된 가장 이른 시기의 무덤 구덩이 중 일부는 기원전 5,000년~4,500년의 것입니다.
희귀한 부장품

가키노시마 유적의 무덤 구덩이에는 다양한 부장품이 함께 매장되었는데, 그중에는 발 모양이 달린 토판(판 모양의 토제품)도 있습니다. 기원전 5,000년~4,500년 무렵의 것으로 추정되는 토판은 그 형태와 크기가 매우 다양하지만 모두 새끼줄 문양(조몬, 縄文)이 있고 1~2개의 발 모양이 달려있다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발 모양은 6~18cm로 아마도 아이의 것이었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반대편 면에 손 모양이 달린 토판도 있습니다.
U자형 성토

이 유적에는 커다란 U자형의 성토(흙무지)가 뚜렷이 남아 있습니다. 이곳에서는 대량의 토기와 석기, 동물의 뼈 파편이 출토되었습니다. 이 성토에서 출토된 유물의 일부와 토양에서는 탄 흔적이 발견되었는데, 이는 이곳에서 불이 피워졌을 가능성을 시사합니다. 또한 성토 한쪽 구석에서 발견된 땅에 도랑을 판 흔적은 U자형의 중앙부분으로 이어지는 길이었을 것으로 추정됩니다. 이 외에도 성토의 중앙부분에서는 갈돌, 검 등의 제사용 도구가 포함된 작은 흙 무더기가 발견되었는데, 이를 통해 이 성토에서 장례식 등의 의식을 행하고 공물을 바쳤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기원전 3,000년경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이 성토는 아마도 수백 년에 걸쳐 축조된 것으로 보입니다. 길이는 190m 이상, 너비는 120m이며 높이는 가장 높은 지점이 2m에 달합니다.
토기
가키노시마 유적에서는 매우 다양한 형태의 토기가 발견되었습니다. 가장 이른 시기의 토기는 바닥 부분이 뾰족하고 흙반죽에 조개껍데기를 눌러 붙인 듯한 문양이 남아 있습니다. 좀 더 시기가 지나면 정교한 장식과 주홍색 칠이 특징인 옻칠 주구토기(액체를 따를 수 있도록 부리가 달려 있는 토기)와 많은 구멍이 뚫려 있는 복잡한 모양의 향로형 토기가 나타납니다. 이러한 출토품을 통해 당시 사람들이 뛰어난 디자인 감각과 고도의 토기 제작 기술을 갖고 있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하코다테시 조몬문화교류센터
하코다테시 조몬문화교류센터[링크]에는 가키노시마 유적, 오후네 유적[링크](가키노시마 유적에서 차로 10분) 등 이 지역의 유적에서 출토된 유물이 전시되어 있습니다. 가장 높이 평가되는 출토품은 내부가 비어 있는 ‘중공 토우’입니다. 이 토우는 채소밭을 일구던 여성에 의해 우연히 발견되었습니다. 이 토우는 복잡한 디자인과 섬세한 문양, 광택있는 마감, 그리고 뛰어난 보존 상태로 고고학자와 미술사가들로부터 큰 찬사를 받고 있습니다. 국보로 지정된 이 토우는 도쿄국립박물관뿐만 아니라 대영박물관, 스미스소니언 박물관 등 전 세계의 대표적인 박물관에서도 전시되었습니다.
하코다테시 조몬문화교류센터에서는 전시 외에도 뜨개질이나 토기 등 선사 시대의 물건을 직접 만들어 볼 수 있는 체험 프로그램도 운영하고 있습니다. 센터 견학 시에는 입장료가 필요합니다. 영어로도 정보를 제공합니다.
관련 유적
오후네 유적[링크]은 가키노시마 유적에서 차로 10분 거리에 있습니다. 대규모 마을 터가 발견된 이 유적에서는 커다란 수혈식 건물의 토대를 볼 수 있습니다. 이 외에 홋카이도에 있는 다른 유적으로는 대형 패총(조개무지)이 발견된 이리에[링크]-다카사고 패총[링크]과 기타코가네 패총, 삿포로 근처에 위치한 기우스 주제묘군[링크]이 있습니다.
기타코가네 패총
홋카이도 다테시에 있는 기타코가네 패총은 기원전 5,000년~3,500년경의 유적입니다. 이 유적에서 출토된 대규모 패총(조개무지)과 여러 구의 인골, 다양한 인공물은 복잡한 형태의 제사가 이곳에서 행해졌음을 말해줍니다. 이 유적은 해안에서 수백 m 떨어진 우치우라 만에 면한 언덕의 경사면에 자리하고 있습니다. 이 유적의 입구에 마련된 박물관에서는 다국어로 된 정보를 제공하고 전시를 실시하고 있습니다.
패총의 출토품

기타코가네 패총에서는 총 5개의 패총이 발견되었습니다. 이들 패총에서는 해양성 쌍각류, 굴, 성게의 껍데기와 물고기, 물개, 고래, 사슴 등의 동물뼈가 확인되었습니다. 패총 내부와 아래에서 무덤 구덩이가 발견된 것으로 보아 이 패총은 중요한 제사를 지낸 장소였을 것으로 추정됩니다. 한 패총에서는 의식에 따라 매장된 14구의 인골, 그리고 고래뼈와 사슴뿔로 만든 장식이 달린 숟가락이 출토되었습니다. 다른 패총에서는 의도적으로 늘어놓은 듯한 사슴의 두개골이 발견되었습니다.
패총과 해안선
패총은 언덕 중턱에 조성되어 있는데, 총 5개의 패총 중 가장 오래된 것이 가장 높은 지대에 있고 그 외 패총은 시대의 흐름에 따라 점차 낮은 위치로 옮겨가고 있습니다. 즉 패총이 만들어졌을 당시에는 해안과 가까웠지만, 서서히 기후가 서늘해지고 해수면이 낮아지면서 약 1,500년에 걸쳐 해안선이 물러난 결과, 현재와 같은 배치를 이루게 되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식재료와 생활
출토된 인골을 연구한 결과, 기타코가네 패총의 사람들은 육류보다 생선을 더 많이 먹었고 나무 열매는 그다지 많이 먹지 않았던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이 인골에는 물고기나 다른 해양 생물에서 유래한 단백질이 다수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충치는 나무 열매를 많이 먹었다는 사실을 말해주는데, 이 유적에서 발견된 치아에는 충치가 전혀 없었습니다.
아마도 이 사람들은 물고기를 잡아 먹으며 생존을 이어갔던 것으로 보입니다. 패총의 여러 곳에서 그물에 다는 석제 그물추, 뿔로 만든 낚싯바늘과 작살 끝 등의 도구가 발견되었습니다.
제사와 관련된 석기의 출토

이 언덕 기슭에 있는 샘 근처에서 대량의 석기가 발견되었습니다. 여기에는 갈돌, 갈판 등의 석기가 뚜렷이 보이는 위치에 묻혀 있었습니다. 이들 대부분은 의도적으로 부수거나 일부러 파손해 버려진 것처럼 보입니다. 어째서 이런 방법으로 버렸는지는 알 수 없지만, 이들 도구 자체나 마을에서 생활을 유지하기 위해 필요한 물에 감사의 마음을 표하는 등 당시 사람들에게는 나름대로 상징적인 의미를 가진 의례의 한 방식으로서 버려진 것으로 추정됩니다.
기타코가네 패총 정보센터
기타코가네 패총 정보센터에서는 이 유적에서 출토된 유물과 패총 한 곳의 실제 절단면을 전시하고 있으며 절단면에 드러난 뼈와 조개껍데기의 종류를 일본어와 영어로 표시하고 있습니다. 이 센터에 전시된 출토품으로는 뿔이나 뼈로 만든 장식품, 뿔로 만든 돌살촉과 작살 끝 등의 사냥용 도구, 그리고 무언가를 갈거나 으깰 때 사용하는 받침대인 갈판과 위에서 내리누르거나 찍는 용도의 갈돌 등이 있습니다. 체험 코너에 전시되어 있는 갈돌은 직접 손에 들고 자유롭게 사용해 볼 수 있습니다. 센터 입장은 무료입니다.
관련 유적
이리에 패총[링크]과 다카사고 패총[링크]이 기타코가네 패총에서 차로 30분 거리에 위치해 있습니다. 우치우라 만 반대편에는 오후네 유적[링크]과 가키노시마 유적[링크]이라는 대규모의 유적이 자리하고 있는데, 이 두 곳에서 출토된 유물이 하코다테시 조몬문화교류센터[링크]에 전시되어 있습니다. 이러한 관련 유적을 함께 살펴보면 선사 시대 일본 북부에 살았던 사람들의 삶의 모습을 좀 더 넓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
다고야노 패총
일본해에서 수 km 떨어진 내륙에 자리한 아오모리현의 다고야노 패총은 쓰가루 평야가 내려다보이는 구릉지에 위치해 있습니다. 이곳에서 발견된 토기 편과 인골을 통해 이 유적이 기원전 4,000년~2,000년경에 형성된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고고학적 조사 과정에서 패총(조개더미), 조개껍데기로 만든 팔찌, 고래뼈로 만든 도구, 수혈식 건물 터가 출토되었습니다.
패총
보통 버려진 쌍각류의 껍데기와 동물의 뼈가 쌓여 형성되는 패총은 과거에 해안과 맞닿아 있었을 것으로 추정되는 유적의 바다 쪽에서 발견됩니다. 패총은 선사 시대 사람들의 식문화와 생활 양식을 알려줄 뿐만 아니라, 지난 1만 년 동안 해안 환경이 어떻게 변화했는지를 보여주는 귀중한 자료이기도 합니다.
다고야노 패총의 출토품
다고야노 패총에 있는 각 패총은 거의 대부분 기수재첩(일본재첩, 학명: Corbicula japonica)의 껍데기로만 이루어져 있습니다. 이는 이 장소에 살았던 사람들에게 기수재첩이 중요한 식재료였다는 사실을 알려줍니다. 또한 기수역(강물과 바닷물이 섞여 소금의 농도가 다양한 구역)에 서식하는 기수재첩이 주로 발견되었다는 점을 통해 이 지역에 사람이 살았을 당시에는 패총이 해안 근처의 호수에 면해있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즉 현재는 수 km 떨어진 해안에 자리한 주산코 호수가 과거에는 다고야노 패총까지 더 남쪽으로 펼쳐져 있었을 것으로 추정됩니다.
인골

다고야노 패총에서 발견된 수혈식 주거지 터의 패층(조개무지가 쌓인 층)에서는 여러 구의 인골이 출토되었습니다. 조사를 통해 이 인골은 성인 여성의 것으로 밝혀졌는데, 방사성 탄소 연대 측정 결과 이 여성은 약 6,000년 전에 살았던 사람으로 추정됩니다.
팔찌와 교역

다고야노 패총에서 발견된 출토품 중에서도 쌍각류 껍데기로 만든 팔찌는 쓰가루 반도의 서쪽 해안에서 주로 발견됩니다. 다고야노 패총에서는 가공되지 않은 조개껍데기와 다양한 제작 단계에 있는 팔찌가 발견되었는데, 이는 팔찌가 다고야노 패총에서 제작되었음을 의미합니다. 건너편에 자리한 홋카이도 남부 유적에서 몇 개의 완성된 팔찌가 발굴되고 다고야노 패총에서 홋카이도의 흑요석으로 만든 도구가 발견된 것으로 보아, 다고야노 마을에 살던 사람들이 이 팔찌를 이용해 홋카이도 남부 마을과 교역을 했을 것으로 추측할 수 있습니다.
Artifacts and related archaeological sites
다고야노 패총에서 출토된 유물은 쓰가루시 조몬주거 전시자료관 카루코와 쓰가루시 기즈쿠리 가메가오카 고고자료실에 가메가오카 석기시대 유적[링크]과 인근 다른 유적의 출토품과 함께 전시되어 있습니다. 가메가오카 석기시대 유적은 다고야노 패총에서 도보로 5분이면 갈 수 있습니다. 이 외에 아오모리현에 있는 다른 유적으로는 산나이 마루야마 유적[링크], 고마키노 유적[링크], 오다이야마모토 유적[링크] 등이 있습니다.
후타쓰모리 패총

아오모리현 오가와라 호수에서 서쪽으로 수 km 떨어진 후타쓰모리 패총이 있는 자리는 기원전 3,500년~기원전 2,000년에 걸쳐 여러 마을이 존재했던 곳입니다. 이 유적 곳곳에서는 150여 개의 수혈식 건물 터와 여러 패총이 발견되었습니다. 이 유적에는 수혈식 건물 2채가 복원되어 있으며 사슴뿔로 만든 장신구 등의 출토품은 인근의 후타쓰모리 패총관[링크]에 전시되어 있습니다.
마을의 규모와 배치
패총을 내려다볼 수 있는 주차장 근처 전망대에는 마을의 배치를 나타낸 안내도가 설치되어 있습니다. 후타쓰모리 패총 마을은 상당히 규모가 큰 마을로 무덤지, 모은 식량을 저장하는 구멍, 패총과 함께 토기나 석기 등의 도구를 폐기하는 장소가 마련되어 있었습니다.
환경이 변화한 증거

기원전 3,900년경 후타쓰모리 패총은 커다란 만을 내려다보는 위치에 있었을 것으로 추정됩니다. 수세기에 걸쳐 해수면이 낮아지고 해안선이 물러나면서 원래 만이였던 장소는 기수호(바다와 연결되어 바닷물과 강물이 섞인 호수)인 오가와라 호수로 변했습니다. 이러한 환경의 변화는 패총에 쌓인 조개껍데기의 종류와 분포에서도 확인할 수 있습니다. 하층에는 굴이나 대합 외에도 기타 해양성 조개류의 껍데기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반면 상층에는 기수재첩(일본재첩) 등 기수역에 사는 조개류의 껍데기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생존을 위한 활동
또한 패총에는 물고기, 백조, 오리, 사슴, 멧돼지 등 동물의 뼈도 포함되어 있습니다. 이는 이 마을의 사람들이 조개류의 채집 뿐만 아니라, 사냥과 낚시로도 식량을 구했다는 사실을 말해줍니다. 밤을 보존하기 위해 사용되는 경우가 많았던 저장 구멍이 발견된 것은 사람들이 숲에서도 식량을 구했을 가능성을 시사합니다.
관련 유적
일본 북부에서 이와 비슷한 마을 터는 산나이 마루야마 유적[링크](아오모리현), 고쇼노 유적[링크](이와테현), 오후네 유적[링크](홋카이도)에서 발견되었습니다.
산나이 마루야마 유적
아오모리현의 산나이 마루야마 유적에 남아있는 수혈식 주거지 터, 대형 건조물의 토대, 대량의 토기가 포함된 성토(흙무지), 무덤지, 토기를 만들기 위한 점토 채굴갱은 선사 시대 이 지역의 생활상과 사회의 모습을 현재에 전해줍니다. 산나이 마루야마 유적은 현재까지 발견된 조몬 시대(기원전 13,000년~기원전 400년) 마을 터 중 가장 큰 규모로, 기원전 3,900년~기원전 2,200년의 1,000년 이상이라는 기간 동안 이곳에 커다란 마을이 존재했다는 사실이 고고학적 조사를 통해 밝혀졌습니다.
마을의 발전
마을의 규모와 형태는 식량 자원의 입수 가능성과 환경적 요인에 따라 조몬 시대 내내 변화했습니다. 마지막 빙하기가 끝날 무렵, 계절 한정으로 이용되는 수렵 채집지로 시작된 이 마을은 기온이 오르고 식량이 풍부해지면서 영구 정착지로 변모했습니다. 이 기원전 5,000년부터 기원전 2,000년 사이에 마을의 규모가 상당히 커졌고, 기원전 3,000년경에는 산나이 마루야마 유적과 같은 커다란 마을이 형성되었습니다. 그후 기원전 2,000년부터 기원전 400년까지 기후가 서늘해지면서 마을의 규모는 다시 작아졌습니다.
크고 작은 수혈식 건물 터
산나이 마루야마 마을에 얼마나 많은 사람이 살았는지는 추정하기 어렵지만, 유적을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수백 명 규모에 이르렀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지금까지 500개 이상의 수혈식 건물 터가 발견되었는데 그중에는 길이가 32m에 달하는 토대도 있었습니다. 이러한 수혈식 건물 터의 상당수는 복원이 완료되어 건물 안으로 들어가 견학할 수 있도록 공개하고 있습니다. 또한 대형 건물은 공용 공간, 작업장, 겨울철의 공동 거주 장소로 활용되었을 것으로 추정됩니다.
무덤지

조사에 따르면 어른의 무덤과 아이의 무덤이 따로 구분되어 있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마을 내부를 지나는 몇몇 길을 따라 약 500개의 무덤 구덩이가 발견되었습니다. 크기로 보아 이 무덤 구덩이는 어른의 것이었을 것으로 추정됩니다. 영유아는 옹관에 넣어 매장되었습니다. 북쪽의 성토(흙무지) 근처에서는 500개 이상의 옹관이 묻혀 있는 것이 발견되었습니다. 세 개의 성토 중 하나인 이 성토에는 많은 토기 편도 묻혀 있었습니다.
교역과 공예품

산나이 마루야마 유적에서 출토된 유물은 비취 구슬, 호박 장식품, 흑요석으로 만든 창끝, 아스팔트로 접착된 물건 등 각종 인공물과 기타 미완성품, 가공 전의 재료 등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물품을 만들기 위한 재료는 이 지역에서 구할 수 없었던 것이기 때문에 일본 내 다른 지역과의 교역을 통해 500km나 떨어진 지역에서 조달했을 것으로 추정됩니다. 또한 이러한 물품들이 출토된 것으로 보아 재료를 가공하는 기술을 가진 사람들이 이곳에서 생활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산나이 마루야마 유적 센터
산나이 마루야마 유적 센터는 산나이 마루야마 유적으로 들어가는 입구입니다. 이 센터에서는 출토된 유물을 통해 이 마을에서 생활하던 사람들의 삶의 모습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박물관 입장권을 구입하면 유적도 관람할 수 있습니다. 산나이 마루야마 유적 센터에는 5,000점 이상의 토기와 석기가 묻힌 높이 6m의 벽 ‘조몬 빅 월’과 조몬 시대를 테마로 한 토우 만들기 체험, 고고학자들이 토기를 복원하는 모습을 창문 너머로 볼 수 있는 정리 작업실이 있습니다. 부지 내부에는 기프트 숍과 카페테리아도 마련되어 있습니다. 박물관과 병설 시설에서는 영어로도 정보를 제공합니다.
관련 유적
홋카이도·도호쿠 지방 북부의 조몬 유적군 중 몇 곳이 아오모리현 내에 위치합니다. 아오모리시에 자리한 고마키노 유적[링크]은 산나이 마루야마 유적에서 불과 수 km밖에 떨어져 있지 않습니다. 이 유적에서는 조몬 시대 후기에 만들어진 환상 열석(거대한 선돌이 둥글게 배치된 유구)이 발견되었습니다. 하치노헤에 있는 고레카와 유적[링크]의 박물관에는 조몬 시대 말기에 제작된 고도로 세련된 토기와 칠기가 전시되어 있습니다.
오후네 유적
홋카이도 남부 하코다테에 있는 오후네 유적에서는 기원전 3,200년경의 대규모 마을의 흔적이 발견되었습니다. 고고학적 조사를 통해 100개 이상의 수혈식 건물의 토대, 무덤, 저장용 구멍과 대량의 토기, 석기, 동물의 뼈가 포함된 성토(흙무지)가 발굴되었습니다. 이를 통해 이 유적에서 약 1,000년 동안 지속적으로 사람들이 거주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거주에 적합한 위치
오후네 유적은 태평양을 마주한 평평한 구릉지 위에 펼쳐져 있으며 주변에는 오후네강이 흐릅니다. 이 마을 유적에서는 탄화된 밤과 물개, 다랑어, 연어, 고래, 사슴의 뼈가 발견되었습니다. 이 마을의 사람들은 바다에서 낚시를 하고 해안을 따라 사냥을 했으며 숲에서 식량을 채취했을 것입니다.
오후네 유적의 수혈식 건물 터

이 마을의 사람들은 수혈식 건물에서 생활했습니다. 수혈식 건물이란 땅을 파서 구획이 나눠지지 않은 하나의 커다란 주거 공간을 만든 뒤, 그 위에 나무 기둥이나 들보를 세운 건물의 형태를 말합니다. 수혈(아래로 판 구멍)의 바깥쪽 가장자리와 기둥이 서 있던 구멍의 위치를 고고학적으로 조사한 결과, 오후네 유적에서 120개에 가까운 수혈식 건물의 토대가 발견되었습니다. 그중 상당수가 겹쳐져 있는 것으로 보아 오래된 건물이 있던 자리에 새로운 건물이 세워졌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이 유적에서 발견된 수혈 중에는 깊이가 2m를 넘고 가로 세로 길이는 10m에 가까운 것도 있습니다. 이 정도 깊이와 길이를 가진 수혈은 다른 유적에서는 거의 찾아볼 수 없습니다. 가장 큰 기초 중 일부가 발굴된 상태로 보존되어 이 유적에 존재했던 건물의 규모를 느낄 수 있습니다.
희귀한 발견
건물 아래에 뚫린 작은 구멍의 바닥에서 검게 변한 흙이 발견되었습니다. 이 흙을 분석한 결과, 태반에서 유래했을 것으로 추정되는 생물학적 물질이 확인되었습니다. 태반을 묻는 행위는 제사를 지내는 과정에서 어떤 중요한 목적으로 행해졌을 것으로 생각됩니다. 과거 일본의 문화에서는 새로 태어난 아이가 건강하게 성장하기를 바라며 태반을 집 현관에 묻는 관습이 있었습니다.
공예품의 보고

이 유적에서는 길이가 거의 80m, 너비는 10m에 달하는 대규모 성토(흙무지)가 발견되었습니다. 이 성토에서는 대량의 토기와 석기, 동물의 뼈, 그리고 사슴뿔로 만든 바늘 등의 공예품이 출토되었습니다. 성토 내부에서는 수혈식 무덤도 발견되었는데, 그 곳에서 불을 피운 흔적도 확인되었습니다. 이 성토는 제사를 지내는 장소로, 또는 도구를 보관하는 장소로 사용되었을 것으로 추정됩니다.
토기의 디자인과 특징
토기의 형태와 디자인을 살펴보면 선사 유적의 연대를 특정하여 그 장소에서 얼마 동안 사람이 살았는지를 알 수 있습니다. 이곳에서 발굴된 바닥이 평평한 원통형 토기는 그 모양과 디자인이 매우 다양합니다. 이와 같은 뚜렷한 변화는 오후네 유적에서 1,000년에 가까운 오랜 기간 동안 지속적으로 사람이 살았다는 것을 말해줍니다. 이른 시기에 만들어진 토기의 장식은 그다지 정교하지 못하고 가장자리도 단순한 모양입니다. 반면, 늦은 시기에 만들어진 토기는 가장자리에 문양이 있고 장식이 달린 특징을 보입니다.
하코다테시 조몬문화교류센터
오후네 유적에서 출토된 유물은 가키노시마 유적[링크] 옆에 있는 하코다테시 조몬문화교류센터[링크]에 전시되어 있습니다. 이 센터에서는 국보로 지정된 속이 빈 중공 토우 등 이 지역의 여러 유적에서 출토된 유물을 전시하고 있습니다. 이 센터는 오후네 유적에서 차로 약 5분 거리에 위치해 있습니다.
관련 유적
이 외에 대규모 마을 터가 발견된 곳으로는 고노쇼 유적[링크](이와테현)과 산나이 마루야마 유적[링크](아오모리현)이 있습니다. 그중에서도 산나이 마루야마 유적은 일본에서 가장 큰 규모의 조몬 시대 유적입니다.
고쇼노 유적
이와테현 북부에 자리한 고쇼노 유적에서는 기원전 2,500년경 이후에 대규모 마을이 존재했다는 사실이 확인되었습니다. 이 유적의 곳곳에서 800개 이상의 수혈식 건물 터가 발견되었으며 유적을 가까이에서 견학할 수 있는 산책로와 박물관도 정비되었습니다.
대규모 마을

고쇼노 유적은 규모가 큰 조몬 마을의 구성을 이해하는 데 도움을 주는 중요한 유적입니다. 이는 기원전 3,000년부터 2,000년 시기에 일반적으로 볼 수 있는 마을의 형태입니다. 마을 중심부에는 매장을 위한 공간이 있고 그 주변에는 각각의 기능을 수행하는 구역이 배치되어 있었습니다. 고고학적 조사를 통해 수혈식 건물 터가 마을의 동쪽과 중앙, 그리고 서쪽에 집중되어 있었다는 것이 밝혀졌습니다. 중앙부에는 여러 개의 돌을 배열하여 위치를 표시한 공동 무덤지가 있는데, 그 옆의 성토(흙무지)에서는 대량의 장식 토기와 석기가 출토되었습니다. 출토품에서 장식적인 특징이 보인다는 점은 이곳이 의식이 행해지던 중요한 장소였음을 의미합니다.
자연 환경
이 유적은 숲으로 둘러싸인 넓은 구릉지에 위치해 있습니다. 주차장에 도착하면 작은 시냇물이 구불구불 흐르는 좁은 계곡의 건너편으로 유적이 보입니다. 여기서 지붕이 달린 휘어진 다리를 건너면 유적 구역으로 들어갈 수 있습니다. 유적 내부에 심어져 있는 호두나무, 밤나무, 칠엽수, 옻나무 등의 나무는 이곳에 사람이 살았던 당시에도 이 자리에 있었을 것입니다. 유적 안을 둘러볼 수 있는 산책로가 정비되어 있으며 여러 식물이 어떻게 이용되었는지가 설명된 안내판도 설치되어 있습니다. 옻나무에서 수액을 채취해 정제한 옻은 토기를 장식하는 재료로 사용되었습니다. 열매를 맺는 나무는 식량으로, 그리고 건축용 목재나 장작으로도 활용되었습니다.
수혈식 건물 터

이 유적에는 몇 개의 수혈식 건물 터가 복원되어 있습니다. 수혈식 건물의 지붕은 초가지붕처럼 풀로 엮은 지붕이었을 거라고 일반적으로 생각하지만, 건물이 불에 탄 흔적을 조사한 결과 고쇼노 유적의 일부 건물에는 흙지붕도 사용되었던 것 같습니다.
조몬 시대(기원전 13,000년~기원전 400년)에 지어진 수혈식 건물의 크기는 다양하지만, 4개 또는 6개의 기둥이 타원형 구덩이 안에 직접 꽂혀진 형태가 가장 일반적입니다. 그리고 지붕은 지표면까지 쭉 뻗어 건물을 완전히 덮는 구조를 취하고 있었습니다. 건물 내부에는 식사 준비 등을 했던 것으로 보이는 화로가 있으며 일부 건물은 다락방과 같은 저장용 창고 공간도 갖추고 있었을 것으로 추정됩니다.
고쇼노 조몬 박물관
고쇼노 조몬 박물관에는 고쇼노 유적과 인근 조몬 유적에서 출토된 유물이 전시되어 있습니다. ‘불에 탄 주거지의 발견’이라는 전시실에서는 고쇼노 유적에서 이루어진 발굴 작업과 조몬 시대의 수혈식 건물 터 구조에 관한 조사 내용을 자세히 설명하고 있습니다. 이 전시실에서는 유리로 된 바닥을 통해 4,200년 전 수혈식 건물의 불탄 잔해를 관찰할 수 있습니다. ‘고쇼노 조몬 월드’라는 전시실에서는 발굴된 토기와 석기를 전시하고 프로젝션 매핑을 사용해 선사 시대 고쇼노 마을의 삶의 모습도 소개하고 있습니다. 2층의 제3 전시실에서는 정교한 장식이 있는 가메가오카식 토기를 소개하고 있습니다.
또한 조몬 시대를 체험해 볼 수 있는 공방에서는 토기 제작, 새끼줄(조몬, 縄文) 엮기, 장식품 만들기 등의 프로그램도 제공하고 있습니다. 박물관 관람 시에는 입장료가 필요하며 영어로도 정보를 제공합니다.
관련 유적
이 외에 같은 시기에 형성된 다른 마을은 오후네 유적(홋카이도)과 산나이 마루야마 유적(아오모리현)에서 발견되었습니다. 산나이 마루야마 유적은 일본에서 가장 큰 규모의 조몬 시대 유적입니다.
이리에 패총
이리에 패총은 해안가에 자리한 대규모 패총(조개무지) 유적입니다. 패총이란 물고기나 동물의 뼈, 조개껍데기 등이 버려져 쌓인 것을 말합니다. 이리에 패총과 인접한 다카사고 패총은 아마도 수백 년에 걸쳐서 형성되었을 것으로 보이며, 가장 높은 최상층은 기원전 약 2,000년까지도 거슬러 올라갑니다. 이 유적에서는 여러 개의 무덤과 수혈식 건물 터도 발견되었습니다.
일반인에게도 공개된 이 유적에서는 흙, 조개껍데기, 뼈 등이 쌓여있는 패총의 절단면과 복원된 수혈식 건물을 볼 수 있습니다. 이 유적은 다카사고 패총[링크]이나 이리에-다카사고 패총관[링크]에서도 걸어갈 수 있습니다.
바다와 패총
기원전 8,000년부터 기원전 5,000년까지 기후가 따뜻해지고 해수면이 상승하는 변화가 일어나자, 사람들은 이리에의 얕은 여울로 이동하여 낚시와 조개잡이를 통해 필요한 식량을 조달했습니다. 선사 시대 일본 북부의 마을에서는 이러한 생활 수단에 크게 의존하면서 점점 더 많은 양의 어패류를 소비하게 되었습니다. 그 결과, 마을 옆에 패총이 형성되었습니다.

그래서 패총을 분석하면 사람들의 식생활이 환경의 변화에 따라 어떻게 달라졌는지를 알 수 있습니다. 하층에는 주로 대합과 굴이, 상층에는 바지락이 있다는 것은 수온과 해수면이 변화했음을 의미합니다. 이 지역 마을의 사람들은 낚시와 사냥으로 식량을 구했기 때문에 조개보다는 육류나 생선을 더 많이 먹었습니다.
공원 남쪽에 있는 입구에서 터널 모양의 통로를 지나 공원 안으로 들어오면 실제 패총의 절단면을 옮겨놓은 전시를 볼 수 있습니다. 이 절단면을 통해 수많은 뼈와 조개껍데기가 땅속에 묻혀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실제로는 조개껍데기보다 물개, 돌고래, 사슴 등 동물이나 물고기의 뼈가 더 많이 보입니다.
고기잡이 도구와 교역

이리에 패총에서 출토된 다양한 낚싯바늘은 낚시 도구가 어떻게 발달했는지를 알려주는 귀중한 자료입니다. 대형 조립식 낚싯바늘이 발견된 것으로 보아 보통 낚시는 먼 바다에서 행해졌음을 알 수 있습니다. 또한 홋카이도에는 서식하지 않는 멧돼지의 어금니를 사용한 장신구 등이 발견되었는데, 이는 이 지역과 일본 혼슈 사이에 해상 무역이 이루어졌음을 뒷받침하는 증거로 여겨집니다.
이 유적에서 출토된 유물은 이리에-다카사고 패총관에서 전시되고 있습니다[링크]. 견학 시에는 입장료가 필요합니다. 기본적인 내용 중 일부는 영어로도 정보를 제공합니다.
고마키노 유적
마키노 유적은 아오모리현에 위치해 있습니다. 인공적으로 평평하게 고른 듯한 구릉지에 수천 개의 돌이 동심원 모양으로 늘어서 있는 환상 열석 유적입니다. 고마키노 유적에서는 3개의 완전한 고리와 1개의 부분적인 고리가 지름 55m의 원을 형성하고 있습니다. 기원전 2,000년경에 형성된 이 유적은 일본 북부에서 손에 꼽힐만큼 커다란 규모의 선사 유적지 중 한 곳입니다. 고고학적 조사 과정에서 무덤 구덩이, 수혈식 건물 터, 의식에 사용된 물품 등이 발굴되었습니다.

이곳의 환상 열석은 다양한 지점에서 가까이 다가가 볼 수 있습니다. 환상 열석의 중심부 근처까지 접근할 수 있어 배열된 돌과 배치된 모양을 좀 더 자세히 살펴보는 것도 가능합니다. 또한 남쪽 전망대에서는 환상 열석의 전체 모습을 위에서 내려다볼 수 있습니다. 유적 입구에 있는 ‘고마키노의 숲 도토리의 집’ 근처에는 무쓰 만, 아오모리 평야, 그리고 핫코다산의 서쪽 기슭을 바라볼 수 있는 전망대가 설치되어 있습니다.
조몬 배움터 고마키노관

유적에서 1.5km 떨어진 곳에 자리한 ‘조몬 배움터 고마키노관’에서는 고마키노 유적과 관련된 자세한 정보를 알 수 있습니다. 조몬 시대의 삶의 모습 등을 전시하고 고마키노 유적에서 출토된 유물 중 일부를 소개하고 있습니다. 영어로도 정보를 제공하며 아이들을 위한 체험형 전시도 실시하고 있습니다. 입장료는 무료입니다.
관련 유적
이 외에 일본 북부에 있는 대규모의 선사 유적으로는 오모리카쓰야마(아오모리현), 이세도타이(아키타현), 오유(아키타현), 와시노키(홋카이도)의 환상 열석 등이 있습니다.
이세도타이 유적

아키타현 북부에 자리한 이세도타이 유적에는 4,000개 이상의 돌을 사용한 4개의 환상 열석(거대한 선돌이 둥글게 배치된 유구)이 형성되어 있습니다. 조사에 따르면 이곳의 환상 열석은 기원전 2,000년 무렵 200년에 걸처 축조되었으며 제사를 지내는 장소로 사용되었던 것으로 추정됩니다. 환상 열석 주변에서는 다양한 양식과 디자인의 토우 등 토제품이 대량으로 출토되었습니다.
돌의 산지
환상 열석은 세계유산에도 등재된 시라카미 산지가 바라보이는 고지대 위에 자리하고 있습니다. 환상 열석에는 요네시로강과 오사루베강 등 이 지역을 흐르는 강에서 가져온 다양한 종류의 돌이 포함되어 있는데, 이 돌들은 최대 5km 떨어진 거리에서 운반되었을 것으로 추정됩니다.
토지의 정비
환상 열석을 조사한 결과, 돌을 배열하기 전에 부지가 평탄하게 정비되었다는 사실이 밝혀졌습니다. 솟아오른 땅은 깎고 움푹 팬 곳은 메우는 당시의 평탄화 작업은 돌이나 나무로만 만든 단순한 도구로 이루어졌을 것입니다.
환상 열석 주변의 건물
환상 열석 바깥쪽 가장자리 주변에서 기둥으로 지지한 건물의 흔적이 발견되었습니다. 이 건물이 무슨 용도로 사용되었는지는 정확히 알 수 없지만, 조사에 따르면 주거지라기 보다는 제사를 지내는 장소로서 주변 지역의 여러 마을이 공유했던 것으로 추정되고 있습니다.
이들 건물은 시신을 매장할 준비를 할 때 사용되었을 거라는 추측도 존재하는데, 환상 열석 주변에서 무덤 구덩이가 발견된 것으로 보아 상당히 가능성 있는 추측으로 여겨집니다. 토양이 산성이기 때문에 인골은 남아있지 않지만, 토우와 부장품이 여러 무덤에서 확인되었습니다. 몇몇 환상 열석 주변에는 기둥을 세우기 위한 구멍이 발굴된 상태 그대로 남아 있으며, 건물의 규모를 느낄 수 있도록 새로 기둥을 세웠습니다.
토우

이세도타이 유적에서는 사람의 모습을 한 독특하고 다양한 표정의 토우가 200개 이상 발견되었습니다. 이들 토우는 납작한 판과 같은 모양의 토우(판상 토우)부터 내부가 비어있는 토우(중공 토우)까지 그 양식과 디자인이 매우 다양합니다. 단순한 디자인의 토우는 손발이 확실하지 않고 추상적인 형태를 띠고 있는 반면, 정교한 토우는 섬세한 문양이나 강조된 곡선 등 신체의 각 부분을 구분할 수 있다는 특징이 있습니다. 대부분의 토우에는 의도적으로 훼손된 흔적이 있는데, 이는 제사를 지낼 때 기도를 드리는 방식의 하나로 일부러 파손한 것으로 추정됩니다.
이세도타이 유적 조몬관
유적 입구에 있는 이세도타이 유적 조몬관[링크]에서는 밝은 조명을 비추는 유리 상자에 출토품을 전시하고 있습니다. 이 조명은 토우 등 토제품의 표정과 복잡한 형태를 좀 더 선명하고 자세히 살펴볼 수 있도록 강조합니다. 또한 이 유적과 환상 열석의 개요를 소개한 전시에는 고고학적 조사 과정에서 발견된 정보가 발굴 당시의 사진과 함께 크게 전시되어 있으며 일본어와 영어로 설명되어 있습니다.
이세도타이 유적 조몬관에서 열리는 공예 체험에 참가하면 장식품이나 토기를 직접 만들어볼 수도 있습니다(예약 필요). 이 외에도 T셔츠나 토우를 테마로 한 기념품 등 폭 넓은 상품이 갖춰진 뮤지엄 숍이 마련되어 있습니다. 전시실 관람 시에는 입장료가 필요하지만, 뮤지엄 숍과 로비에는 무료로 입장할 수 있습니다. 로비에서는 환상 열석과 관련된 짧은 동영상이 상영되며 영어 등의 여러 언어로도 시청할 수 있습니다.
관련 유적
이 외에 일본 북부에 있는 대규모의 선사 유적으로는 기우스 주제묘군[링크](홋카이도))과 오유[링크](아키타현),와시노키[링크](홋카이도),고마키노[링크](아오모리현),오모리카쓰야마[링크](아오모리현)의 환상 열석 등이 있습니다.
오유 환상열석환상 열석
아키타현 가즈노시에 자리한 이 유적은 8,000개 이상의 돌이 두 개의 커다란 원 모양으로 배치된 환상 열석 유적입니다. 기원전 2,000년경에 만들어진 이 환상 열석은 돌이 배치된 모양으로 보아 태양의 움직임을 알기 위해 제작한 것으로 추정됩니다. 이 거대한 열석을 세우는 데는 엄청난 노력과 세심한 계획이 필요했을 것입니다. 구내 박물관에서는 환상 열석에 관한 정보를 소개하고 이 유적에서 출토된 토기와 의식에 사용된 물품을 전시하고 있습니다.
환상 열석의 특징

두 개의 환상 열석은 각각 안쪽 고리와 바깥쪽 고리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이 고리는 적은 수의 돌을 원형이나 마름모형 등으로 작게 늘어놓은 배석이 고리 모양으로 배치된 모습입니다. 각 환상 열석의 안쪽 고리와 바깥쪽 고리 사이의 한 곳에는 한 개의 돌을 세우고, 그 주변으로 다른 돌을 방사형으로 늘어놓은 형태의 배석이 만들어져 있습니다. 이러한 배석의 배치는 해시계의 모양과 유사하며, 하지와 동지에는 북서-남동 축을 따라 그림자가 하나의 선을 형성하도록 배열되어 있습니다. 고고학적 조사를 통해 배석 아래에서 무덤 구덩이가 발견되었는데, 이는 각각의 배석이 하나의 무덤을 나타낸다고 추정할 수 있습니다.
만자 환상 열석
두 개의 환상 열석 중 큰 것을 만자 환상 열석이라고 부릅니다. 지름 52m의 만자 환상 열석에는 약 6,500개의 돌을 사용한 100개 이상의 배석이 존재하는 것으로 밝혀졌습니다.
노나카도 환상 열석
노나카도 환상 열석이라 불리는 다른 하나의 환상 열석은 만자 환상 열석에서 100m 정도 떨어진 곳에 위치해 있습니다. 지름 44m의 노나카도 환상 열석은 약 2,000개의 돌을 사용한 60개 이상의 배석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고고학적 발견
환상 열석의 바깥 고리 주변에서 4개 기둥과 6개 기둥으로 지탱되는 건물의 기초가 발굴되었습니다. 또한 의식에 사용되었을 것으로 추정되는 매장물도 발견되었습니다. 건물 토대의 특징과 주변에서 발견된 대량의 의식용 도구로 보아 이 건물은 주거용이 아닌, 의식에 사용된 건물이었을 것으로 추정됩니다. 몇몇 건물들이 복원된 만자 환상 열석 주변에서는 이 환상 열석의 4,000년 전 모습을 가늠해볼 수 있습니다.
환상 열석의 축조
이 환상 열석을 축조하는 데는 200년 이상이 걸렸을 것으로 추정됩니다. 가장 무거운 돌은 200kg이 넘습니다. 고대 사람들은 이렇게 무거운 돌을 최대 4km나 떨어진 강에서 단순한 도구만을 사용해 옮겼을 것입니다.
녹색 돌
오유 환상 열석에 사용된 많은 돌들은 녹색을 띠고 있습니다. 이 돌은 오유 환상 열석에서 동쪽으로 수 km 떨어진 모로스케산에서만 발견되는 고유종입니다. 모로스케산 기슭을 흐르는 아쿠야강에서 유적 발굴 현장과 가장 가까운 오유강을 내려와 이동했을 것으로 추정됩니다. 왜 이 특정한 돌이 환상 열석을 건설하는 데 선호되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어떤 특별한 의미가 있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오유 스톤서클관

발굴된 수백 개의 토기와 토우, 토판(판 모양의 토제품), 석기는 오유 스톤서클관에 전시되어 있습니다. 토기로는 시신을 매장할 때 사용했던 커다란 독과 정교한 장식이 달린 화분, 항아리 등이 있습니다. 석기는 대부분 크기가 작고 검, 화분, 삼각형 석판(판 모양의 석제품) 등의 형태를 취하고 있습니다. 모든 출토품에는 장식이 달려 있어 의식에 사용된 것으로 추정됩니다.
관련 유적
이 외에 일본 북부에서 발견된 대규모의 선사 시대 유적으로는 이세도타이(아키타현), 와시노키(홋카이도), 고마키노(아오모리현), 오모리카쓰야마(아오모리현)의 환상 열석 등이 있습니다.
기우스 주제묘군
조몬 시대(기원전 13,000년~기원전 400년) 후반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기우스 주제묘군(기원전 약 1,200년경)은 삿포로시 동남쪽에 인접한 지토세시의 삼림지에 위치해 있습니다. 주제묘란 땅에 원형의 수혈(아래로 판 구멍)을 파고 파낸 흙을 수혈 주위에 고리 모양으로 쌓아 올려 커다란 도넛 모양의 제방(주제, 周堤)을 만든 후, 그 안에 여러 개의 무덤을 배치한 것을 말합니다. 크기는 지름 30~75m 정도로, 배치된 형태로 보아 사전에 치밀한 계획이 세워졌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러한 주제묘는 일본 북부에 자리한 선사 시대 마을에 복잡한 매장 관습이 있었음을 증명하는 증거입니다.
견학 공간이 마련된 이 유적에서는 주제묘군의 주위를 돌며 관찰할 수 있으며 그중 일부는 가까이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이 주제묘군과 인근 유적에서 출토된 유물은 지토세시 교육위원회 매장문화재센터[링크]에 전시되어 있습니다.
규모가 큰 주제

홋카이도의 일부 지역, 특히 기우스 주제묘군이 위치한 이 지역에서는 땅에 원형으로 된 커다란 구멍을 파고 그 주변을 너비 및 높이가 수 m에 달하는 제방으로 둘러싼(주제, 周堤) 유적이 발견되었습니다. 후에 이루어진 고고학적 조사에서 이러한 주제는 여러 마을의 공동 무덤지로 사용되었음이 밝혀졌습니다. 기우스 주제묘군 중에서도 가장 커다란 2호 주제묘는 지름 73m, 높이 4m, 토대부의 너비가 20m를 넘는 제방으로 둘러싸여 있습니다. 이 주제묘의 건설에는 25명이 작업했을 때 약 4개월이 소요된 것으로 추정됩니다.
9개의 기우스 주제묘 중에서 한 구역에 모여 있는 7개의 무덤 중 일부는 제방을 공유하고 있습니다. 각 주제묘 사이에 작은 길이 있고 일부 제방이 다른 곳보다 낮게 형성되어 있는 것으로 보아 이는 각 무덤으로 들어가는 입구였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고고학적 발견

1960년대부터 시작된 광범위한 조사와 부분적인 발굴을 통해 주제묘군의 내부와 제방의 바깥 둘레에 무덤 구덩이가 존재한다는 사실이 밝혀졌습니다. 1호 주제묘를 조사하던 중 지하 60cm 지점에서 5개의 무덤 구덩이를 발견했는데, 그중 하나에 돌이 세워져 있는 것으로 보아 어떤 목적으로 특별히 표시된 무덤이었을 것으로 추정됩니다. 그 외 다른 주제묘의 주변과 내부에서 발견된 구멍에서는 제사에 사용되었을 것으로 생각되는 토우의 파편, 원형 조석(배석), 붉은 안료의 흔적, 복잡한 조각이 달린 간석기가 확인되었습니다. 이 석기는 특정한 의식에 사용되었을 것으로 추정됩니다.
기우스 주제묘군의 규모와 이를 완성하기 위해 필요로 했을 노동력을 생각해보면 이 유적에 특별한 중요성이 부여되었을 것이라고 예상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무덤이나 와시노키[링크](홋카이도), 오유[링크](아키타현), 이세도타이[링크](아키타현), 고마키노[링크](아오모리현), 오모리카쓰야마[링크](아오모리현)의 환상 열석 등의 유적을 통해 기원전 2,000년경 이후부터 매장 방법의 복잡성과 장례 의식의 중요성이 점차 두드러졌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전시된 매장물
기우스 주제묘군과 인근의 다른 유적에서 출토된 식량, 토기, 석기, 매장 관습 등 조몬 시대(기원전 13,000년~기원전 400년)의 생활 양식과 관련된 매장물은 지토세시 매장문화재센터[링크]에서 볼 수 있습니다. 이 센터는 기우스 주제묘군에서 차로 10분 거리에 위치해 있습니다. 입장료는 무료입니다. 일부는 영어로도 정보를 제공합니다.
오모리카쓰야마 유적
아오모리현 히로사키시에 자리한 오모리카쓰야마 유적에는 1,000개 이상의 돌이 77곳에 늘어서 환상 열석을 형성하고 있습니다. 기원전 1,000년경에 만들어진 이 환상 열석은 이와키산에서 이어진 구릉지에 위치해 있습니다. 이 유적에서는 쓰가루 국정공원의 일부이기도 한 이와키산과 그 주변 지역의 아름다운 경치를 감상할 수 있습니다.
가는 방법
이 유적으로는 숲 속의 산책로(계단 있음)나 완만하게 조성된 배리어프리 길로 접근할 수 있습니다. 숲 속에 마련된 산책로를 이용하면 밤나무 등 다양한 과일 나무들 사이를 빠져나오게 됩니다. 이러한 나무들은 이 지역에 정착한 선사 시대 사람들에게 식량을 제공했을 것입니다. 두 길 모두 이와키산을 바라볼 수 있는 탁 트인 공간으로 연결됩니다.
인공적으로 만들어진 성토(흙무지) 위에 있는 이 널찍한 부지의 중심에는 환상 열석이 형성되어 있습니다. 환상 열석 중심부에서는 이와키산을 선명하게 바라볼 수 있습니다.
이와키산과 환상 열석의 위치

이와키산은 후지산과 비슷한 형태의 성층 화산으로 좌우 대칭의 완만한 경사면이 특징입니다. 이러한 산의 모양이 후지산을 닮았다고 해서 지역명인 ‘쓰가루’를 붙여 ‘쓰가루 후지’라고도 불립니다. 지역 주민들에게 신앙의 대상으로 여겨지는 이 이와키산 정상에는 신사가 세워져 있습니다. 동지에 환상 열석에서 건너편의 이와키산을 바라보면 정확히 산 정상으로 해가 지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이는 이 지역에 살았던 선사 시대 사람들에게 이와키산이 특히 중요한 존재였음을 의미합니다.
신앙의 장, 환상 열석

이 유적의 곳곳에서 갈돌, 석판(판 모양의 석제품), 토우 등이 발굴되었습니다. 제사가 행해졌던 다른 유적과 같은 모양의 유물이 출토된 것으로 보아 이 환상 열석도 제사를 지내는 신앙적인 장소였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수혈식 건물 터
이 탁 트인 부지 끝에서 원형 수혈식 건물(지름 13m)이 존재했던 흔적이 발견되었습니다. 이 수혈식 건물 터의 크기와 이 유적에서 발견된 수혈식 건물 터가 단 하나뿐이라는 사실을 비추어 보면, 이 건물은 제사를 지내는 장소로서 마을의 중심적인 존재였다는 것을 추정할 수 있습니다.
매장물과 관련 유적
오모리카쓰야마 유적 주변에서 발견된 출토품은 이 유적에서 차로 10분 거리에 있는 스소노 지구 체육문화교류센터[링크]의 로비에 전시되어 있습니다. 출토품의 일부는 이 지역의 다른 유적에서 출토된 유물과 함께 히로사키시립박물관[링크]에도 전시되어 있습니다. 일본 북부에서 제사가 행해졌던 다른 유적으로는 고마키노 유적[링크](아오모리현), 이세도타이 유적[링크](아키타현), 오유 환상 열석[링크](아키타현) 등이 있습니다.
다카사고 패총
다카사고 패총(기원전 약 900년)은 인근 마을의 무덤지로 사용된 것으로 추정되는 대형 묘지 유적입니다. 고고학적 조사와 부분적인 발굴을 통해 패총과 여러 개의 토광묘(타원형의 구덩이를 파고 시신을 매장한 무덤)가 있는 묘지의 존재가 밝혀졌습니다. 이 유적은 일반인에게 공개되어 있으며 패총과 무덤 구덩이의 위치도 표시되어 있습니다. 이리에-다카사고 패총관[링크]에서 다카사고 패총에 관한 좀 더 자세한 지식을 얻을 수 있습니다.
복잡한 장례 의식의 흔적

이 유적은 조몬 시대(기원전 13,000년~기원전 400년) 내에서도 시대의 흐름에 따라 매장 의식이 점점 더 복잡한 형태로 진화했음을 알려줍니다. 토광묘의 형태는 대체로 닮아 있는데, 시신의 팔다리는 일정한 각도로 구부리고 머리는 대부분이 북서쪽을 향한 거의 같은 자세로 매장되어 있었습니다. 또한 대부분의 무덤 구덩이에서 토기와 석기, 그리고 기타 부장품이 발견되었습니다. 무덤지 내부에서는 고리 모양으로 배열된 돌이 발견되었으며, 그 장소에서 토우와 붉은 안료가 담긴 토기가 출토되었습니다. 7개의 토광묘에서 안료의 흔적이 발견되었는데, 이는 장례 의식 과정에서 안료 가루가 뿌려졌기 때문인 것으로 추정됩니다.
보존 상태가 양호한 인골
산성 토양이 대부분인 일본에서는 선사 시대 무덤에서 인골이 발견되는 일이 흔치 않지만, 다카사고 패총에서는 많은 수의 인골이 깨끗한 상태로 발견되었습니다. 그 이유는 이곳에서는 시신이 패총 내부의 구덩이에 매장되어 대량의 뼈와 조개껍데기에서 스며나온 탄산칼슘이 인골을 보존하는 데 도움을 주었기 때문으로 추정됩니다.
더 자세한 내용

가메가오카 석기시대 유적

가메가오카 석기시대 유적(기원전 약 1,000년)에서는 후에 ‘가메가오카식 토기’라고 불리게 되는 조몬 시대(기원전 13,000년~기원전 400년) 후반에 일본 북부에서 만들어진 토기의 일부가 발견되었습니다. 고도의 제작 기술과 훌륭한 디자인 감각을 보유한 이 공예품은 곧 널리 이름을 알리게 되었습니다. 가메가오카식 토기는 도쿄국립박물관, 대영박물관, 메트로폴리탄 미술관 등 세계 각지의 대표적인 박물관과 미술관에도 소장되어 있습니다.
예술과 정신성
이 유적을 발굴한 결과, 죽은 사람을 기리기 위해 다양한 물품을 함께 묻은 토광묘(타원형의 구덩이를 파고 시신을 매장한 무덤)가 밀집되어 있다는 사실이 밝혀졌습니다. 무덤 구덩이와 유적 곳곳에서는 잘 갈고 닦여진 토기, 광택이 있는 비취 구슬, 옻기, 식물 섬유로 짠 물건, 정교한 머리장식을 착용하고 커다란 눈이 특징인 속이 빈 중공 토우 등 다양한 매장물이 발견되었습니다. 이렇게 장식품이 공물로써 함께 묻혔다는 사실은 조몬 시대 말기의 사회가 발달된 정신 세계를 보유하고 복잡한 형식의 제사를 지낸 진화한 사회였음을 말해줍니다.
여러 마을이 공동으로 사용한 무덤지 유적

조몬 시대 말기에 가까운 기원전 1,500년~기원전 400년경이 되면 무덤지는 마을 바깥에 만들어지고 여러 마을이 함께 공유하는 형태로 변모합니다. 또한 의식을 치르는 장소와도 구분되도록 분리했습니다. 이전의 마을(기원전 3,000년~기원전 2,000년)과 비교해 마을의 규모가 작아지고 분산되면서 이러한 변화가 일어났던 것으로 보입니다. 여러 마을이 공동으로 사용했을 것으로 추정되는 가메가오카 석기시대 유적은 조몬 시대 말기의 독립적인 형태를 잘 보여주는 무덤지입니다.
인접한 관련 유적
가메가오카 석기시대 유적에는 몇몇 안내 표지판과 정교한 머리장식을 착용하고 커다란 눈이 특징인 토우상이 있습니다. 근처에 있는 다고야노 패총[링크]까지는 걸어서 15분 정도면 도착할 수 있습니다. 쓰가루시 조몬주거 전시자료관 카루코[링크]와 쓰가루시 기즈쿠리 가메가오카 고고자료실[링크]에는 가메가오카 석기시대 유적과 이 지역에 있는 다른 조몬 유적에서 출토된 유물이 전시되어 있습니다. 다소 멀기는 하지만, 같은 아오모리현 내에 자리한 하치노헤시의 하치노헤시 매장문화재센터 고레카와 조몬관에는 고레카와 석기시대 유적에서 발견된 가메가오카식 토기가 전시되어 있습니다.
고레카와 석기시대 유적
고레카와 석기시대 유적이란 아오모리현 하치노헤시에 있는 인접한 세 유적군의 총칭입니다. 이 유적은 나카이 유적(기원전 1,000년~기원전 400년), 홋타 유적(기원전 3,000년~기원전 2,000년), 이치오지 유적(기원전 4,000년~기원전 2,000년)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니이다강 근처 구릉지 위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이들 유적을 조사한 결과 무덤 구덩이, 저장 구멍, 토기, 수혈식 건물 터와 대량의 칠기가 발굴되었습니다. 출토품은 하치노헤시 매장문화재센터 고레카와 조몬관의 기획전에서 전시되고 있습니다. 이 기획전에서는 선사 시대 일본 북부의 생활상과 공예품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나카이 유적
나카이 유적은 조몬 시대 말기(기원전 1,000년~기원전 400년)에 약 700년 동안 사람이 살았던 곳입니다. 이 유적의 중심에 있는 구릉지에서는 해시계 모양으로 배열된 돌이 발견되었는데, 이를 통해 이 장소가 제사의 장으로 기능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 구릉지의 동쪽과 서쪽에서는 여러 개의 무덤 구덩이가 발견되었고 남쪽과 북쪽에는 낮은 습지대가 형성되어 있습니다. 이 낮은 습지대에서는 석기, 목기, 토기, 칠기와 더불어 호두껍데기와 밤껍질이 발견되었습니다. 구릉지의 북쪽 끝에서는 수혈식 건물 터가 발견되었습니다.
나카이 유적의 식물과 생활

이 유적의 토양 속 꽃가루, 목기와 칠기, 그리고 보존된 종자 등을 연구한 결과, 이 마을에 생육했던 식물의 종류와 그것들이 어떻게 사용되었는지를 밝힐 수 있었습니다. 호두나무와 칠엽수는 식량인 동시에 수혈식 건물이나 목공의 재료로 사용되었으며 옻나무에서 채취한 수액을 정제하여 옻을 만들고 유연성이 있는 사철나무 목재로는 활을 만들었습니다. 이들 유적은 마을 사람들이 주변의 식물을 이용하기 위해 토지를 관리했다는 사실을 알려줍니다.
나카이 유적의 토기와 칠기
나카이 유적에서는 정교한 장식이 달린 토기와 복잡한 모양의 칠기가 다수 출토되었습니다. 이 제작물들은 당시 사람들이 고도의 제작 기술과 뛰어난 디자인 감각을 보유하고 있었음을 말해줍니다. ‘가메가오카식 토기’라고 불리는 이러한 양식의 토기는 일본 북부에서 나타나는 조몬 시대 말기의 미학적 특징이기도 합니다. ‘가메가오카식’이라는 용어는 아오모리현 북부의 가메가오카 석시시대 유적에서 발견된 토기에서 유래했습니다. 가메가오카식 토기는 도쿄국립박물관, 대영박물관, 메트로폴리탄 미술관 등 세계 각지의 대표적인 박물관과 미술관에도 소장되어 있습니다.
하치노헤시 매장문화재센터 고레카와 조몬관에는 주로 나카이 유적과 니이다강 건너편에 있는 가자하리 유적에서 출토된 토기(기원전 2,000년~1,000년)가 전시되어 있습니다. 또한 앉은 상태에서 양 손을 모은 자세를 취한 국보, 합장 토우와 그 외 수백 점의 중요문화재도 소장되어 있습니다.
홋타 유적
홋타 유적은 나카이 유적보다 2,000년 정도 앞선 기원전 3,000년~기원전 2,000년 무렵의 유적입니다. 이 유적에서는 토기, 나무 열매를 저장했던 것으로 추정되는 여러 구덩이, 그리고 수혈식 건물 터가 발견되었습니다. 이곳에서 발견된 대다수의 토기는 입구가 넓고 바닥이 점점 좁아지는 형태를 취하고 있는 것이 특징입니다. 이러한 토기에는 장식이 많고 대담한 문양이 덧대어져 있기도 하지만, 이 유적보다 훨씬 이후의 시기에 형성된 나카이 유적의 토기와 같은 정교한 마감과 복잡성은 보이지 않습니다. 이 유적에서 출토된 몇몇 토기는 하치노헤시 박물관에 전시되어 있습니다.
이치오지 유적
이치오지 유적은 고레카와 석기시대 유적의 세 유적 중에서도 가장 오래된 기원전 4,000년~기원전 2,000년 시기의 것으로 그 규모 또한 가장 큽니다. 이 유적에서는 수혈식 건물 터와 대량의 토기 및 토기 편이 포함된 최대 1.5m 두께의 층이 땅속에서 발견되었습니다. 이 층에는 토기 외에도 물고기와 동물의 뼈, 그리고 뼈나 뿔로 만든 낚싯바늘, 빗 등의 도구도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이 유적에서 출토된 토기는 기다란 원통형에 새끼줄 문양(조몬, 縄文)이 있는 것이 특징이지만, 대부분은 홋타 유적이나 나카이 유적에서 출토된 토기보다 장식이 적습니다. 하치노헤시 박물관은 이치오지 유적에서 출토된 다양한 유물을 전시하고 있습니다.
하치노헤시 매장문화재센터 고레카와 조몬관

가메가오카식 토기의 대표적인 출토품 대부분은 이 하치노헤시 매장문화재센터 고레카와 조몬관에 전시되어 있습니다. 이곳에 전시된 출토품으로는 토기 외에도 토우, 관옥(대롱옥, 돌을 대롱 모양으로 성형한 장식품), 기타 장식품과 옻칠을 한 활이나 바구니 등의 도구를 들 수 있습니다. 이 센터에서는 선사 시대 일본인들의 삶의 모습을 소개하는 비디오를 상영하며 공예 체험 코너와 기념품을 판매하는 뮤지엄 숍도 갖추고 있습니다. 영어로도 정보가 제공될 뿐만 아니라, ‘포켓 학예사’라는 어플리케이션을 사용하면 다국어 음성 해설 가이드도 들을 수 있습니다. 이 어플리케이션은 현지에서 다운로드할 수 있습니다.
관련 유적
‘홋카이도·도호쿠 지방 북부의 조몬 유적군’ 중에서 가메가오카 석기시대 유적[링크], 고마키노 유적[링크], 산나이 마루야마 유적[링크], 후타쓰모리 패총[링크] 등의 유적이 아오모리현에 위치해 있습니다. 이와테현의 고쇼노 유적[링크]도 고레카와 석기시대 유적에서 비교적 가까운 거리에 자리하고 있으니 한 번쯤 들러 보시기를 추천드립니다.
조시치야치 패총
조시치야치 패총은 기원전 6,000년경의 유적으로, 알려진 일본 북부의 패총 중에서도 가장 오래된 것 중 하나입니다. 이 유적에서 발견된 유물을 통해 연안 지역에 형성된 초기 마을의 식생활과 생활상, 그리고 선사 시대 일본인들의 삶의 모습을 만든 환경적 요인 등에 관한 내용이 밝혀졌습니다.
해수면과 해안선

이 유적은 해안에서 수 km 떨어진 고노헤강의 범람원이 내려다보이는 구릉지에 있습니다. 약 1만 년 전 마지막 빙기(氷期)가 끝난 후, 기온이 점점 따뜻해지고 해수면이 상승하면서 이 지역에 사람이 살기 시작한 8,000년 전에는 해안선이 내륙 방향으로 후퇴하게 되었습니다. 이로 인해 물고기를 잡거나 조개를 채취하기에 이상적인 얕은 만과 넓은 갯벌이 생겨났고, 만이 내려다보이는 자리에 이 조시치야치 패총이 형성되었을 것으로 추정됩니다.
식재료와 생활

이 유적에서 발견된 뼈로 만든 조립식 낚싯바늘, 작살 끝, 어망에 다는 석제 그물추 등 다양한 고기잡이 도구 등은 이곳에 풍요로운 어로 문화가 뿌리내리고 있었음을 말해줍니다. 발굴 조사 결과, 약 30종의 조개류와 약 20종의 물고기 뼈 외에 조류와 포유류의 뼈도 출토되었습니다.
하치노헤시 박물관
조시치야치 패총에서 출토된 유물은 선사 시대부터 근대까지 하치노헤의 역사를 소개하는 하치노헤시 박물관[링크]에 전시되어 있습니다. 관람 시에는 입장료가 발생합니다. 일부는 영어로도 정보를 제공합니다.
R관련 유적
이 외에 일본 북부에서 패총이 발견된 유적으로는 기타코가네 패총[링크](홋카이도), 이리에 패총[링크](홋카이도), 다카사고 패총[링크](홋카이도), 다고야노 패총[링크](아오모리현),후타쓰모리 패총[링크](아오모리현) 등이 있습니다.
와시노키 유적
와시노키 유적은 홋카이도 남부 모리마치에 위치한 유적입니다. 지금까지 알려진 것 중 홋카이도에서 가장 큰 규모의 환상 열석(폭 37m)입니다. 기원전 2,000년경에 형성된 이 유적은 아오모리현과 아키타현에서 발견된 같은 시기의 환상 열석과도 유사성을 보입니다. 도호쿠 지방 북부와 홋카이도 남부에 있는 환상 열석은 이 두 지역 사이에서 문화가 공유되었다는 증거로 여겨집니다.
환상 열석의 구성

이 환상 열석의 바깥쪽에는 2개의 고리가 있고 중심에는 타원형의 배석이 있습니다. 환상 열석을 구성하는 602개의 돌 대부분은 땅에 박힌 상태로 똑바로 서 있으며 다양한 각도로 안쪽 방향을 향하고 있습니다. 이 돌들은 약 1km 떨어진 가쓰라강 하구에서 옮겨진 것으로 추정됩니다. 환상 열석 근처에서는 무덤 구덩이와 오징어 모양의 작은 토제품 등이 발견되었습니다.
환상 열석의 보호
언덕 위에 자리한 이 환상 열석은 2003년 고속도로 건설 공사 과정에서 발견되었습니다. 유적을 보호하자는 활동이 결실을 맺어 이 언덕은 그대로 유지하면서 유적 아래에 터널을 뚫는 계획으로 변경되었습니다. 터널을 공사하면서도 항상 진동을 감시하며 돌이나 지층이 움직이지 않도록 세심한 주의를 기울여야 했고 일부 작업은 동력 기계를 사용하지 않고 해야만 했습니다. 이러한 노력의 결과로 환상 열석은 본래의 장소에 그대로 유지된 채, 아래로는 고속도로가 지나는 현재의 모습을 갖추게 되었습니다.
환상 열석의 견학

이 유적은 소재지 문제로 일반인에게는 공개되지 않고 모리마치 유적발굴조사사업소에서 실시하는 견학회를 통해서만 방문할 수 있습니다. 이 사업소에서는 환상 열석과 유적에서 출토된 유물을 전시하는 전시실을 마련하여 입장료 무료로 운영하고 있습니다. 정보는 일본어로만 제공합니다.